애니메이션 · 스텔라르 팀 공동 포트폴리오

8시의 서울

참여 창작자 이성효 · 김대윤 · 강동현
최종 업데이트 2026-09-19 06:03

작품 세계관서울에는 이야기를 먹고 사는 작은 짐승이 산다. 이름은 해치. 옛날엔 궁궐 앞에 앉아 옳고 그름을 가리던 돌 영물이었지만, 수백 년 사람들을 지켜보다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날로 해치는 받침대에서 내려와 은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낮에는 라디오 스튜디오 DJ 데스크 위에서 손바닥만 한 피규어인 척한다. 저녁 8시 프로그램 '8시의 서울'의 마스코트다. DJ 고유빈이 "안녕하세요, 8시의 서울, 고유빈입니다" 하는 순간 해치는 눈을 뜬다. 해치는 폴짝 뛰어내려 창문 틈으로 빠져나간다. 저녁 8시의 서울은 해치의 뷔페다. 누군가는 한강을 달리고, 해치는 짧은 다리로 함께 달리는 척한다. 누군가는 청계천을 함께 걷고, 해치는 뒷모습을 졸졸 따라간다. 누군가는 남산에서 오래된 사람을 떠올린다. 연인이 자물쇠를 걸던 겨울에도 해치는 곁에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손은 하나만 남았다. 혼자 남은 사람이 전망대 앞에 오래 서 있을 때, 해치는 말없이 다가가 톡톡 토닥이고 사라진다. 슬픈 이야기도 먹는 대신 그 사람을 지켜 준다. 달빛 야시장에서는 가족 사이에 끼어 진열대를 구경한다. 밤이 깊어지면 버스와 지하철이 빛의 줄기가 되어 도시를 가로지른다. 화면 아래 3분의 1은 도시, 위 3분의 2는 텅 빈 네이비 하늘. DJ가 묻는다. "당신에게, 8시의 서울은 어떤 모습인가요." 새 이야기의 냄새를 맡은 해치가 화면 왼쪽으로 후다닥 달려 나가고,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빈 하늘 위로 타이틀이 떠오른다. 그 이야기의 주인은 이 영상을 보는 당신일지도 모르니까. 해치는 말을 하지 않고, 사람보다 작으며, 한 장면에서 한 가지 장난만 친다. 어두운 화면에서 반짝이는 것은 은색 스니커즈뿐이라, 관객은 매 장면마다 작은 은빛을 찾아 해치를 발견한다. 해치가 있다는 것은 그 자리에 누군가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