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가기전에 나의서울
참여 창작자 손경섭 · 권다영
최종 업데이트 2026-09-19 05:55
작품 세계관2030년 크리스마스, 한 가족이 로봇의 가슴에 은색 스니커즈를 신은 해치 배지를 달아 준다. 로봇의 눈은 카메라이고, 입에서는 사진이 나온다. 가족사진을 찍으려 오른팔을 든 그 순간에서 세상만 바뀐다. 10년 뒤 폐기장... 하지만 하나를 만나고 희망이 생긴다
이 영상은 「감정은 비어서 나온다」는 한 줄의 규칙 위에 세워졌다. 세운상가 장인이 꺼낸 한국산 메모리 칩에는 감정 칸이 비어 있다. 「채우는 건 밖에서. 데리고 다녀.」 감정은 설계되는 것이 아니라 서울의 밤을 걸으며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로봇은 아무 말도 배우지 않는다. 광화문 돌담, 한강 다리, 여의도 충전소, 석촌호수 포장마차를 지나며 두 번 볼이 붉어질 뿐이다. 첫 번째는 카드가 없어 충전을 못 하는 로봇 대신 무심히 카드를 대고 엄지를 들어 보이며 달려가는 러너에게서 받은 정(情)이고, 두 번째는 불꽃 아래 아기를 목마 태운 가족과 옆에 선 하나를 보며 알게 된 행복이다. 「감정: 비어 있음」이라고 적혀 있던 칸이 채워지는 과정을 우리는 대사 대신 발그레 한 번으로 보여 주려 했다.
서울은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공급처다. 2040년의 서울은 미래를 살짝만 얹었다. 홀로그램 요금판과 서빙 로봇이 있지만 포장마차는 여전히 할머니가 지키고, 해치는 은색 스니커즈를 신고 밤새 쟁반을 나른다. 밤의 서울 경제는 첨단화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는 것이고, 그 노동 곁에 감정 없는 로봇이 한 자리 더 앉아도 아무도 이상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상상한 서울의 미래다.
10년간 들려 있던 오른팔은 「너도 오늘은 퇴근이야」라는 하나의 말에 처음으로 내려간다. 사진을 찍어 주던 존재가 처음으로 찍히는 쪽에 서는 순간, 올해가 가기 전에 로봇은 자기 서울을 갖는다. 기억은 배지로, 감정은 발그레로, 상상은 해치가 일하는 포장마차로. 서울에 대한 기억과 감정과 상상을 한 로봇의 첫 퇴근에 담았다.